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한때 삼성과 함께 우리나라 대기업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대우라는 그룹이 있었다. 그 대우 그룹을 이끌던 김우중이라는 분이 계셨다. 맞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분. 굴지의 대기업을 맥없이 말아 드신 분, 그분이 맞다.
그분의 행보도 인상적이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도 하나 남겼는네 바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다. 아마 같은 제목으로 책도 내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이 짧은 문장에서 넓고 와 많다는 툭하면 다른 단어로 교체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문장으로 탈바꿈한다. 이 문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없던 의욕도 생기게 하거나 반대로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지 못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어제 배달시켜 먹었던 피자 테두리를 씹고 있는 젊은 백수들에게는 일종의 조급함이나 죄의식을 심어준다. 각설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넓고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어디 가서 함부로 까불고 잘난척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건 기가 꺾일 대로 꺾였던 내 나이 40대 초반이었다. 그 생각은 세월이 덧입혀져 점점 더 나를 겸손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숫자로 대변되는 나이를 내세워 어른인 척, 다 아는 척,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함부로 했다가는 부끄러운 일이 생기기 쉽다. 사실 현실적으로. 잘난 척하려야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아는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젊은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 가령 스마트폰이나 전자 기계 사용법)은 거의 대부분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톡톡 튀는 그들만의 언어와 말 센스 그리고 적절한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발랄한 세대를 무슨 수로 이길 수가 있을까. 이쯤 되면 우리에겐 경험치와 노련함이 있다고 반기를 드는 늙은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소리. 그 잘난 경험과 노련함을 어떻게 써먹고 있는지 잘 생각이나 해보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저 바라보다가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그토록 스마트하게 성장해준 것에 흐뭇해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거라.
77년생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진 황선우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김하나. 두 사람 모두 매력이 철철 넘치고 참신하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글을 잘 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려운 단어도 없이 마치 친구랑 수다를 떨듯 일기를 쓰듯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채워진 책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어떤 고전보다도 나는 좋았다. 책의 구성도 편집도 심지어 사진도 게다가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들도 다 예뻤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그들의 분자식 W2C4 (우먼 둘 고양이 넷)을 꾸준히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다.

하..... 그나저나 이 책을 딸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내친김에 김하나의 책 힘 빼기의 기술까지 틈틈이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내가 빨리 읽은 게 아니라 책이 붙들고 늘어지는 힘이 있다. 두 권 다 리디셀렉트에서 전자책으로 읽었다. 눈 건강이고 뭐고 새로운 책에 반하고 반하고 맨날 반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