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보다 시원찮은 건강 때문이든 빡빡한 일상 때문이든 혹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든 콧바람을 쐬러 다니기가 참 어렵다. 집이 징하게도 좋은 나는 집 밖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해놓고도 막상 집을 나서는 마지막 관문인 현관 앞에만 서면 다시 신발을 벗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눌러야 할 정도로 집의 유혹이 크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 나무가 제 몸을 비벼대는 소리. 조용한 산길을 접어들 때 나는 새소리, 파도의 넘실거림, 뱃멀미 같은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지에서의 모든 것들을 느끼고 싶을 때 나의 선택은 궁색하지만 책을 통한 여행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토록 신비로운 책은 없을 것이다.
섬은 닮은 듯 각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처럼 신기하고도 아름답고 처절하고 눈물겨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모든 섬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해도 눈앞에 이렇게 훤하게 섬의 모습이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흰 이끼가 펼쳐진 것 같은 섬. 백야도의 마지막 사공이 저어주는 나룻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가 다시 모도로 뱃머리를 돌린다. 없는 것 빼곤 있을 건 다 있는 유일한 가게 모도 슈퍼 할머니와 새우깡 한 봉지를 오도독오도독 까먹고 섬에 마지막으로 남은 해녀 할머니의 이야기가 궁금해 만재도로 떠났다가 죽음과 같은 바다의 손짓을 이겨내고 모진 세월을 기어이 살아낸 해녀 중의 으뜸 해녀 공명산 할머니의 이야기로 눈물을 쏟아내고 섬에 살면 모두가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섬이라면 바다와 육지를 잇는다리를 놓아 더이상 섬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곳들이나 제주도에 가본 것이 전부인 나는 이름도 생소한 크고 작은 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한반도 삼면 곳곳의 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라 수없이 많은 바닷길을 헤쳐나갔을 작가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그 수고가 아니엇다면 섬에 숨겨진 비밀스런 이야기들과 보석같은 경치를 구경이나 했을까.섬의 절벽 끝에 부딪히는 파도에 휩쓸리듯 섬사람들의 이야기에 휩쓸린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 같은 모진 인생 이야기에 나도 덩달아 숨이 차고 다시 일어나 걷기를 포기하고도 싶어진다. 배가 와닿기 전에는 영영 외로움을 떨쳐낼 수 없는 곳.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한 곳. 자꾸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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