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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by 캣테일 2019. 8. 3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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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놓으려다 보니 이래저래 고민이 깊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고민은 아무래도 내 글에 대한 나의 평가가 굉장히 박하다는 것이다. 이걸 글이라고 썼나 하는 생각은 기본이고 무언가를 창조할만한 자격, 그러니까 책 한 권을 채울만한 체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기도 전에 뒤따라오는 의문도 만만치는 않다. 나는 여전히 지난하게 책을 쓰고 있는데 나보다 늦게 시작한 작가들은 두세 달 만에 책이 인쇄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책을 내겠다는 결심도 빠르지만 결과물을 내놓는 일도 거침없이 빠르다.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속도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조급증에 걸려버린다. 아. 나는 안되는 일을 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거구나. 마침내 나는 글에서 등을 돌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며칠간은 좌절의 시간에 빠진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예컨대 이런 거다. 책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지금처럼 줄곧 긴장 속에 사는 것이 정상적인가. 나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쓰는 것은 미련한 글쓰기인가. 납득하기 힘들었던 편집자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건가. 내가 써놓은 글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가.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날선 평가를 받아들이고 그 말들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까지. 대부분은 처음이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들이자 자신을 믿지 못해 생기는 의문이었다. 한두 번의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캄캄한 동굴 속을 걷는 기분이다. 쉬운 글쓰기 방법을 가르치고 빨리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수없이 읽었지만 읽을수록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노력하면 누구나 쓸 수 있고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쓰지 말고 거침없이 쓰라는 말뿐이다. 책을 덮으며 혼잣말을 한다. 참 간단하구나. 책이 알려준 대로 하자면 나는 대책 없이 거꾸로 하고 있다. 니가 맞다. 너의 방식이 틀린 건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간절히 듣고 싶었다. 칭찬과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글 쓰는 이의 자세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것 즉 누구도 오르지 못한 높은 산에 오르거나 건너지 못한 드넓은 바다를 건너는 것입니다. 기존의 흐름을 크게 바꿀 만큼 개성적인 작품을 낳을 것이라는 강한 포부를 품는 것입니다. 그런 포부를 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재능입니다

자신만의 작품을 쓰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머리를 장식해줄 왕관을 추구할 뿐이니 작가를 지향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일곱 번은 고쳐 쓴다

정념을 뒤흔드는 것이 문학의 최대 목적입니다. 몸이 좋지 않더라도 태풍이 몰아치더라도 하루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씁니다. 작품의 질을 올리는 건 그다음 순서입니다. 우선 기본 설계를 끝내고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작품으로 좁혀나가는 손질의 과정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주제와 스토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실력이 아직 그 수준입니다. 글의 수치를 견디면서 다시 읽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은 실수의 패턴이 있다는 것이고 그 형태는 고작 대여섯 종류에 그칩니다. 그것을 적어도 일곱 번은 고쳐 씁니다.


서두르지 마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조급한 것일까요.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을 때도, 서두르면 실수할 수도 있는데도 서두르는 것은 대체 왜일까요? 문학이 쇠퇴하는 지금 시대에도 소설을 쓰는 이든 편집하는 이든 서두르지 못해 안달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평가를 받고 싶은 초조함을 누르는 일. 주위의 움직임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성공적으로 일을 하려면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능률을 올리는 방향은 자멸의 길로 이어집니다.

출판의 세계를 파악하라

대책 없는 패거리들이 당신의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세계라는 것을 일찌감치 아는 편이 좋습니다. 다른 세계도 그렇지만 이 세계에도 불순한 정이 많습니다. 예술이니까 순수한 세계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가장 난감한 유형은 애당초 의욕이 없는 편집자. 월급 받고 회삿돈으로 작가들과 노닥거리면 그만인 편집자. 의욕은 있으나 안목은 없고 작가를 출세 도구로 여기는 유형. 작품의 질은 어떻든 많이 팔리기만 기대하는 유형. 신인작가에게 호통치며 잘 나가는 편집자인척하는 유형. 최소한 반년은 걸려야 할 책을 한 달 남짓에 쓰라고 하면서 그래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있다고 은근히 부추기는 유형.

문학에 발 담그는 자. 문학을 고민하라

문학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주로 판매가 격감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판매가 줄어들면 그때야 질에 대해서 말하려 합니다.날개듣친듯 팔러나갈 때에는 아무도 질을 따지지 않습니다.

작가가 미래의 작가에게 하는 당부

다시 말해 써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써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인데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전긍긍 고민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쓰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어깨에 잔뜩 힘주고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말고 조금씩 쓰십시오. 있는 힘의 절반 정도만 사용해서 느긋하게 써나가십시오.









이래서 일본 문학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구나. 미래의 작가를 향한 매서운 채찍들이 글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채찍이 오히려 반가운 건 적어도 문학 속에 있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고의 진리는 매일 꾸준히 써야 하는 것이고 일곱 번을 고쳐 쓸 만큼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라는 말에선 눈물이 날 만큼 감격스러웠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너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고 칭찬 스티커를 두 개는 받은 기분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건 없건 지금처럼 매일 조금씩 써나갈 것이다. 긴장할 것 없이 어깨에 힘을 빼고 설렁설렁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뒤도 돌아보기 싫을 만큼 만정이 뚝 떨어져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인쇄에 들어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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