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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묻다

by 캣테일 2019. 8. 2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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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날칠 수도 있는 인연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친구라는 정겨운 단어로 청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그 친구가 무려 동네 친구라는 점이다. 오랜 기간찍장인의 삶이었기에 갖고 싶었지만 결코 가질 수 없던 동네 친구.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한수희 작가는 말했다. 동네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봄의 밤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를 둘러싼 냉담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려깊은 고요함으로 바뀌고 동네 친구를 만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내 마음이 요즘 딱 그렇다. 겨우 양치만 하고 세수는 안한채 아무렇게나 걸치고 산책을 나가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반가워해 줄 사람. 일찍 저녁을 해먹고 나면 텀블러세 연근차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아파트 벤치에 앉아 함께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는 사이.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걱정없이 안녕!이라는 짧은 말로 이별을 해도 큰 아쉬움없이 내일 또 얼굴을 볼 사이. 친구에게 책 읽기를 은근슬쩍 권했었다.고맙게도 그친구는 요즘 책 읽기에 빠졌다.  내가 미처 읽지못한 책을 읽고는 내게 책소개도 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만의 은신처를 만들고 각자의 삶에 불안이 찾아오면 그곳에 숨어들어 서로를 위로하기로 약속했다. 일명 우리는 문학의 동반자. 감미로운 문학의 최면에 걸려있는 두 여자다.



출판사 시와서 에서 보내준 책  꽃을 묻다 는 문학의 동반자가 되어준 동네 친궂더럼 소리도 없이 서서히 내마음의 빈틈을 찾아 적셨다. 봄밤에 지는 꽃잎처럼 내려앉아 버리는 책이다. 좋은 글이란 원래 대단하고 떠들썩한 내용은 없는 법이다.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썼을뿐인데 뎅뎅~ 종소리가 마음에 울린다. 기차를 타고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갔을 뿐인데 기적소리같은 여운이 두고두고 남는다. 어린 시절 꽃을 땅바닥에 묻었다가 다시 찿아내는 놀이를 추억했을 뿐이지만 나도 덩달아 화단에 얼마 남지도 않은 철쭉을 꺾어 알록달록한 구슬과 함께 땅에 감추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은 일본 작가들의 감성과 사유의 세계가 한없이 부럽다.  잘난 척하는 일본의 모습이 보기싫어 외면했지만 나쓰메 소세키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시시콜콜한 산문을 읽으면 이것만큼은 인정하기로 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일본의 문학적 감수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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